울산대학교 | 프랑스어·프랑스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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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학습 수기

현장학습 수기

05년 해외현장학습 체험기 - 정은비
작성자 이** 작성일 2011-06-28 조회수 1861

해외현장학습을 다녀와서

 

20040284

정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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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벌써 8개월이나 흐른 내 생애 잊지 못할 8개월 동안의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소개하려 한다. 2005년 9월은 내가 기대하고 설레어하던 달이었다. 왜냐하면 난생처음 한국과 부모님의 품을 떠나 다른 나라와 다른 곳에서 생활한다는 기대감과 프랑스에 대한 환상에 너무 들떠 있었다. 프랑스에 가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외국 친구들도 사귀고 불어도 확실히 늘어서 오리라고 난 다짐했다. 프랑스에 가기 전 같이 프랑스로 가는 동기들과 선배들과 우리는 자주 모여서 비행기표, 보험, 비자, 여권 때문에 회의도 하고 같이 방 쓰는 아이들끼리 준비물도 짜서 돈을 모아 장도 보고..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난 재미있었고 즐거웠다. 2005년 9월 28일.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프랑스로 가는 날이 다가왔다. 전날 나는 잠을 쉽게 이룰 수가 없었다. 상징탑에서 11시에 버스를 타고 부산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학여행 가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공항에서부터 우리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기내 10㎏ 미만, 가방 30㎏으로 정해져 있어서 우리는 짐 가방이 정해진 ㎏을 넘을까봐 조마조마했다. 다행이 넘은 아이들의 짐은 서로 나눠서 가방에 넣어주고 이렇게 공항에서의 일은 쉽게 해결되었다.

15시 20분에 김해공항을 출발해서 17시 20분에 동경에 도착했다. 경유를 했기 때문에 일본에서 하룻밤 자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동경에서 우리는 호텔로 가는 버스를 쉽게 찾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었다. 짧은 영어실력으로 묻고 물어서 우리는 버스를 타고 1시간가량 걸려서 나리타호텔에 도착했다. 각자 방 배정받고 교수님 말씀을 듣고 방으로 가서 씻었다. 너무 긴장하고 힘들어서인지 바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모여서 아침을 먹고 다시 공항으로 가서 11시 10분에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파리 현지 시각으로 16시 35분에 도착했다(한국 시각 23시 35분). 파리에 내려서 리옹까지 TGV를 타고 리옹에서 샹베리까지 버스를 타고 갔다. 샹베리에 있는 호텔에 도착하니 22시 가량.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다. 나는 613호. 방키를 받고 짐을 가지고 방에 들어갔다. 솔직히 생각했던거보다 실망했지만 샹베리에 왔다는 생각에 실망했던 마음도 잠시였고 신기했다. 짐을 풀고 정리하고 이렇게 프랑스에서의 나의 하루는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ISEFE에 가서 등록금 1050유로 내고 처음으로 학생식당에서 밥도 먹고 BNF에 가서 계좌 열어서 돈도 넣고 Carrefour 가서 장도 보고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웠다.

10월 1일, 우리는 처음으로 교수님과 함께 여행을 갔다. 기차타고 AIX LES BAINS으로.. 비가 오고 추웠지만 도시락 사가서 점심도 먹고 LAC DU BOUGET 가서 배도 타고 교수님께서 에스프레소도 사주시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그날 저녁에는 교수님과 파티도 하고 포도주도 먹고 한국이 조금 그리워지려는 나에게는 위로가 되는 날이었다.

10월 3일에는 9시까지 ISEFE에 가서 반편성 시험을 쳤는데 너무 어려웠다. 그 다음날은 반편성 시험 결과에 따라 반 나뉘어서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3반이었다. ISEFE 첫 수업이다.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고 어떤 친구들이 있을지.. 반에 들어가자 여러 나라의 아이들이 앉아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과 다른 수업이 이루어졌고 나는 이런 수업을 처음 들었기 때문에 적응이 안되었다. 그리고 숙제는 어찌나 많은지..나는 3반에서 일주일 정도 수업을 하다가 2반으로 내려왔다. 2반에서의 첫수업. 거의 한국인과 중국인이 대부분이었고 체코인이 2명 있었다. 수업은 대체로 연극수업이랄까? Folliet 교수님께서는 불어문법을 담당하시는 분이었다. 우리에게 한주동안 문법과 숙어를 가르쳐 주시고 그 담주에는 조를 정해서 주제를 주면 우리는 시간 내에 배역을 정하고 대화를 자서 친구들 앞에서 연극을 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방식의 수업을 한 적이 없어서 난 친구들 앞에서 불어로 연기까지 하는 이 수업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가 불어를 못한다는 생각과 자심감이 없어서 앞에 나가면 불어생각도 안나고 떨려서 연기도 못하고 그랬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재밌고 수업시간도 금방 흘러갔다, 그리고 앞에 나가서 연기를 할 때, 긴장해서 불어를 외워서 그런지 수업시간에 외운 불어단어가 기억에 오래 남았다. Bonet 교수님께서는 프랑스문화를 담당하셨는데, 매주 다른 주제를 가지고 오셔서 프랑스의 교육제도, 음식과 예절 등 프랑스에 관한 것에 많은 이야기도 해주시고 학생들에게 각자 나라의 문화에 대해 물어보시기도 하고 프랑스와의 차이점도 물어보시고 수업은 거의 대화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문화 뿐 아니라 중국, 체코문화까지 알게 되었고 우리나라와의 문화차이도 알 수 있었다. 매주 금요일은 듣기수업이 이루어졌고 한국과 다른 수업 방식에 새로웠다. 자주 쪽지시험을 쳐서 매일 공부를 해야했고 그래서인지 매주 배운 수업내용을 잊어버리지 않고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12월 말에는 2주간 방학이 있어서 방학 전날에는 학교에서 프랑스 요리(Crepe)도 배우고 각자 자신의 나라 음식을 준비해와서 음식도 나눠먹고 1월 초에는 개학을 해서 다시 수업이 진행되었다. 1월 말에는 grande test가 몇 일 동안 문법시험, 말하기시험, 듣기시험이 이루어진다. grande test가 끝나면 학기가 끝난다. 학기가 끝나는 날에는 파티가 열리는데 강당 같은 곳에 모여서 각반에서 준비한 노래나 춤, 연극을 하고 음식을 먹고 얘기도 하고 성적표도 받고 이렇게 짧은 4개월 동안의 한 학기가 끝이 난다.

나는 이번 학기에는 얻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난 외국 친구도 많이 못 사귀었고 불어가 확실히 트인 것도 아니고 처음 내가 프랑스에 올 때 생각했던 것과 하나도 만족하는 것이 없었다. 다른 나라에서 생활하는게 쉽지만은 않았지만 한번더 해보고 싶었다. 이렇게 한국에 가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한국 가는 친구들 보면서 많이 흔들렸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지만 이렇게 지금 한국 가면 잠시는 좋겠지만 프랑스에서의 생활과 프랑스에서의 공부는 언제 할 수 있을지, 다시는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한 학기를 프랑스에서 더 보내기로 하고 이번 학기에 느끼고 생각한 것을 다음 학기에는 실천하고 열심히 하기로 다짐했다. 이제 나는 기댈 사람이 없고 혼자라고 생각했다. 당장 방부터 구해야 했다. 호텔은 이제 단체가 아니고 개인이라 저번에 살던 가격에서 200유로 정도 더 내라고 했다. 나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학교의 비서에게 가서 나는 나의 상황을 말하고 방을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비서는 나에게 한 집을 소개시켜 주었다. 학교에서 많이 멀었지만 세 식구에 애완동물이 없다고 했다. 방값도 적당하고 그리고 나는 개를 싫어했기에 만족했다. 그 집에 전화를 해서 방문하기를 원한다고 약속을 잡았다. 약속한 그날 너무 떨렸다. 쿠키를 사들고 주소와 지도를 들고 그 집을 찾았다. 그런데 식구는 5명, 소 크기의 개가 있었다. 개를 보고 놀란 나는 기겁을 했다. 주인아저씨는 이런 나를 보더니 개가 착하다며 만져 보라고 하셨다. 정말 개는 착하고 온순했다. 주인아저씨와 아줌마께 쿠키를 드리고 주인아저씨와 아줌마는 나에게 나의 방과 혼자 쓸 수 있는 부엌과 욕실을 구경시켜 주셨다. 그리고 나서 아이들을 소개해 주셨다. 첫째 아이니에스 15살 여자아이였고, 둘째 오딜 12살 여자아이, 셋째 프랑수와 8살 남자아이 모두 귀엽고 착했다. 좀 전에 놀랬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친절하고 다정다감하게 대해주시는 이 가족이 너무 좋아졌다. 꼭 한국에 있는 나의 집에 온 것 같았다. 난 계약하고 키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왠지 좋은 느낌이 든다. 이사하고 보증금과 방값을 내고 다시 한 학기가 시작되었다. 4월에 주인아주머니께서 생신이라 나는 감자전과 편지를 드렸다.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내가 더 기뻤다. 그리고 한국음식도 소개해 드릴 수 있었다. 부활절에는 오딜이 계란 초컬릿도 나에게 주고 프랑스는 5월 1일이 Fete du travail이라서 쉬는 날이다. 프랑수와는 나에게 은방울꽃을 주었다. 오늘은 은방울꽃을 주는 날이란다. 외로운 나에게 작은 관심을 주는 이 가족들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오딜이랑은 같이 한국음식도 만들면서 놀고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짧은 4개월은 또 금방 흘러가고 난 한국으로 돌아올 날이 되었다. 주인아저씨께서는 새벽에 가는 나를 역까지 태워주시고 배웅까지 해주시고 메일 주소를 주시면서 연락하라고 하셨다. 한국에 와서 메일을 확인하니 아저씨께서 나에게 벌써 메일을 보내셨다. 짧은 기간이지만 나에게 잘 대해주시고 마지막까지 잊지 않고 메일까지 보내주시는 정성에 나는 감동했다.

나는 이런 점이 보완되었으면 한다. 프랑스에 가기 전에 이미 다녀오신 선배들과 많은 만남을 주선해주어서 프랑스에서의 생활에 대한 나쁜 점과 좋은 점, 해외현장학습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를 많이 듣게 해주었으면 하고 모든 준비과정에서 혼자서 스스로 하도록 하였으면 합니다.

 

2부

니스, 모나코 여행기(10월 21일-22일)

10월 21일, 정남모 교수님과 우리는 오전 8시쯤 역에서 기차를 타고 발랑스로 가서 TGV로 갈아타고 4시간 정도를 달려 니스에 도착했다. 우리는 도미토리가 가능한 호텔에 가서 21.20유로를 주고 하룻밤 예약을 했다. 20유로는 방값, 1.20유로는 이불값이었다. 니스에서 잠시 구경하다가 모나코로 갔다. 모나코는 정말 작은 나라였고 잘 사는 나라 같았다. 하나의 그림이랄까 예술 그 자체였다. 사진 찍고 구경을 하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옷을 잃어버리셔서 찾으러 가셨다. 우리는 교수님을 기다리면서 계속 놀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교수님이 오시질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조를 나눠서 몇 명은 교수님을 찾으러 가고 남은 사람들은 여기서 계속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교수님은 아무데도 없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니스 가는 기차를 놓칠까봐 역으로 갔다. 다행이 역에서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교수님과 우리는 서로 엇갈렸던 것이다. 서로 찾으러 다녔던 것이다. 우리는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것처럼 반갑고 좋았다. 우리는 니스 기차시간을 알아보고 막차를 예약한 후 모나코 야경을 구경하기로 했다. 밤 야경의 모나코는 더욱 아름다웠다. 그리고 때마침 그날은 모나코 맥주 100년 파티를 하는 것이었다. 신기한 차도 많고 맥주도 공짜로 먹고 너무 좋았다. 우리는 신나게 놀고 니스로 와서 중국음식점에 가서 음식도 배불리 먹고 호텔로 가서 씻고 포도주도 다같이 한잔하고 너무 즐거웠다.

그 다음날에는 니스 해변가도 구경하고 잊지 못할 1박 2일의 여행이었다. 우리와 함께 프랑스에 오셔서 고생하신 교수님과 함께여서 더욱 즐거웠고 재미었다. 니스와 모나코 여행에서는 교통비로 왕복 80유로 정도와 방값 21.20유로가 들었다. 음식은 모두 교수님께서 사주셔서 돈이 들지 않았다. 잡비는 10유로 정도 들었다.

이탈리아 여행기(11월 17일-21일)

다들 이탈리아로 여행 간다고 하면 이 말부터 한다. 소매치기 주의하라고..

그래서 나는 무섭고 걱정이 많이 되었다.

11월 17일, 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로마로 갈 준비를 하고 역으로 갔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탈리아로 가는 것은 순조롭지 않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로마로 가는 기차가 있었는데 그 기차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우리는 빨리 도착지를 밀라노로 바꿔서 35유로 주고 표를 끊어서 밀라노로 갔다. 밤늦게 밀라노에 도착해서 지하철 타고 한인민박집을 찾아갔다. 한인민박집이란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인데 여기에 가면 대부분 아침과 저녁을 주는데 음식은 모두 한국식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쉬어간다. 하룻밤에 20유로이고 애교를 부리면 18유로까지 해주신다. 여기에 가면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고 많은 여행 경험담을 들을 수도 있다. 18일 아침에 밀라노를 구경하고 나는 베네치아로 갔다. 베네치아는 뭐라고 해야할까? 물 위에 떠있는 도시라고 해야할까.. 유리공예가 유명해서 유리로 만든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 예쁜 도시였다. 저녁에 로마로 갔다. 로마의 테르미니역에 19일 새벽 6시에 도착하였고 미리 예약해둔 한인민박집에 가서 짐 내려놓고 아침밥 먹고 바티칸 투어를 하기 위해 가이드 20유로 주고 바티칸에 구경하러 갔다. 바티칸은 하나의 나라라고할까? 관광객도 많았고 소지품 검사도 철저하고 나는 바티칸에 들어가기 위해 입장료 8유로 주고 가이드 오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천천히 둘러보았다. 저녁에는 가이드 오[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로마 시내 야경을 구경시켜준다고 해서 너무 추웠지만 나는 따라갔다. 트레비분수에 가서 동전을 던지면서 소원도 빌고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이렇게 좋은 곳에 오니 가족 생각도 많이 났다. 혼자서만 맛있는 거 먹고 구경하니 미안한 생각도 들고, 가족 곁을 떠나니 가족의 소중함도 알게 되고 많은 것을 느꼈다. 민박집에 돌아가서 저녁 먹고 잠이 들었다. 20일에는 로마 시내 투어를 하기 위해 테르미니역에서 버스 타고 로마 시내로 갔다. 진실의 입, 콜로세움 추운 것만 빼면 다 좋았다. 날씨가 추워서 힘들었지만 TV나 책에서 보던 것이 눈앞에 있으니 힘든 것도 잠시였다. 점심에는 로마에서 유명한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고 저녁에는 어제 갔던 트레비분수와 야경을 구경하고 다시 한 번 동전을 던지면서 소원을 빌었다. 오늘은 로마의 마지막 밤이여서 아쉬웠지만 다시 꼭 올 것이라고 다짐하고 이렇게 이탈리아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아무런 사고와 위험 없이 이번 여행을 잘한 것 같아서 좋았고 내 기억에 또 잊지 못할 기억이 생겨서 너무 좋았다. 21일 아침 로마에서 밀라노로 가서 샹베리로 가는 기차를 탔는데 잘못 탄 것이었다. 다시 밀라노로 가서 샹베리 가는 기차를 두 시간 가량 기다려서 샹베리로 돌아왔다. 힘들고 추운 여행이었지만 그만큼 더 보람있었다.

11월 17일-18일 11월 19일-20일

밀라노 차비 35유로 바티칸 가이드비 20유로 총 170유로

한인민박 20유로 피자 2.70유로

아이스크림 1유로 바티칸 입장료 8유로

지하철 3유로 로마시내 투어비 20유로

기타 30유로 피자, 스파게티 12유로

한인민박 18유로

보르도 여행(12월 1일-2일)

보르도. 꼭 한번 가고 싶었던 도시. 포도주가 유명한 곳. 나는 이곳을 가보기로 했다. SNCF에 가서 보르도 가는 기차 시간 알아보고 기차표 끊고 1일 저녁 역에 가서 기차 타고 리옹으로 가서 밤기차로 갈아타고 기차에서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2일 아침 8시쯤 보르도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오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우산도 없었기에 나가서 구경도 할 수 없었고 역에 앉아서 비가 그치기를 바랄 수밖엔 없었다. 다행이 한 두시간 지나니까 빗줄기는 가늘어졌고 날씨도 맑아지기 시작하였다. 보르도 지도를 구해서 지도를 보면서 보르도 시내로 갔다. 보르도에서 포도주 가게에 들어갔는데 정말 크고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가게의 규모도 컸지만 무엇보다 포도주의 종류가 엄청 많았다. 난 한국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포도주를 샀다. 사고 나니 어찌나 뿌듯하고 좋은지. 한국에서 느끼지 못한 이런 기분을 여기서는 여행하면서 많이 느낀다. 가족 생각도 많이 나고, 이 선물을 받고 기뻐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니 내가 더 좋았다. 기차 시간이 다되어서 더 구경하지는 못하고 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샹베리로 돌아왔다.

12월 1일-2일

차비 70유로 총 140유로

포도주 50유로

기타 20유로

리옹불빛축제 Fete la lumiere(12월 8일-9일)

학교에서 오늘 리옹불빛축제가 열린다며 가기를 원하는 학생들은 오후 5시까지 경치청으로 모이라고 하였다. 리옹은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고 나는 샹베리에서 멀지 않은 리옹에 꼭 한번 가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이런 기회가 생겨서 가기로 했다. 나는 오후 5시까지 경시청에 갔고 학교에서 온 버스가 있었다. 버스를 타고 2시간 정도 가서 리옹에 도착하였다. 리옹에 내려서 새벽 2시까지 Bellecour광장에서 모이기로 하고 우리는 각자 축제를 즐기기 위해 헤어졌다. 축제는 벌써 진행 중이었고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나는 샹베리와 다른 리옹이 신기할 뿐이었다. 거대한 불빛축제였다. 그러나 추워서 구경하다가 카페에 가서 쉬다가 사진도 찍고 새벽 두시가 다 되어서 Bellecour광장을 찾아가야 하는데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묻고 물어서 Bellecour광장을 찾아갈 수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샹베리로 돌아왔다. 너무 춥고 새벽에 집에 도착해서 힘들었지만 좋은 곳을 구경하고 돌아와서 좋았다.

12월 8일-9일

차비 8유로 총 18유로

기타 10유로

파리여행(12월 21일-25일 / 5월 26일-27일)

노엘방학과 크리스마스를 맞아 나는 파리로 갔다. 3시간 정도 걸려서 파리의 Gare de Lyon에 도착하였다. La place역 주변에 위치한 한인민박집에 찾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는데 지하철은 너무 복잡했고 지하철 내부는 너무 더러워서 파리에 대한 환상에 젖어있던 나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한인민박집에 가서 밥 먹고 어떤 오빠를 민박집에서 만났는데 나에게 파리 가이드를 해준다고 하셨다. 파리의 길을 몰랐던 나는 기뻤다. 오빠의 도움으로 팡테옹이랑 소르본대학이랑 쉽게 찾아가서 구경할 수 있었고 샹젤리제 거리도 가고 길을 헤매지 않고 쉽게 파리를 다닐 수 있었다. 22일에는 루브르박물관에 갔다. 내 앞에 루브르박물관이 있다니. 그저 신기하였다. 5시간 정도 구경하고 나와서 물랑루즈에 갔다. 물랑루즈 앞에 가서 사진도 찍고 놀다가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23일에는 베르사유궁전을 가보기로 했다. 베르사유궁전은 파리의 외곽지역에 있어서 RER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베르사유궁전은 크고 이뻤다. 내부를 구경하고 밖에 있는 정원을 구경하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너무 이상했다. 봄이나 여름에 보면 이쁠 것 같았다. 베르사유궁전에서 오전 내내 있다고 오후에는 드디어 에펠탑을 보러갔다. 진짜 크고 TV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내가 에펠탑 앞에 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샤이오궁까지 걸어가서 에펠탑 사진 찍고 에펠탑 2층까지 올라갔는데 파리가 한눈에 다들어왔다. 파리야경도 구경하고 추운것만 빼면 너무 좋았다. 파리에 온 첫날 난 실망했지만 파리에 있을수록 왜 이렇게 파리 여행객이 끊이지 않는지 왜 파리가 유명한지 알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에 나는 추억을 남기기 위해 파리 외곽 지역에 있는 디즈니랜드에 갔다. 날씨도 좋고 크리스마스이브라서 그런지 사람도 많았고 디즈니랜드에 가니 동심에 푹빠졌다. 놀이기구도 타고 맛있는 음식도 사먹고 너무 즐겁게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다.

내 생애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다. 저녁에는 디즈니랜드에서 쇼도 하고 불빛쇼도 하고 재밌고 즐거운 하루가 되었다. 25일 오늘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4박 5일의 파리의 여행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 버렸다. 라데팡스에 가서 현대적인 건축물도 보고 바또무슈도 타고 즐거운 파리의 여행이 이렇게 끝이 났다. 아쉬웠지만 또 오리라고 다짐하고 샹베리로 돌아왔다. 내 생애 잊지 못할 4박 5일이다.

5월 26일, 나는 파리에 또 한 번 갔다. 겨울에 다녀왔던 파리여서 난 봄에는 어떤 모습의 파리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파리에 가니 여전히 관광객과 사람들은 붐비고 혼란스러웠다. 에펠탑에 가니 주위에는 꽃도 피고 푸른 나무들로 더 이뻤고 또 겨울에 보았던 에펠탑과 다른 모습이었다. 에펠탑에서 놀다가 샹젤리제 거리에 가서 개선문도 보고 새벽 2시까지 놀다가 민박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지하철이 끊긴 것이다. 다행이 버스는 운행하였고 버스를 타고 민박집에 갈 수 있었다. 새벽이여서 그런지 술 취한 취객들도 많았고 날씨가 따뜻하니 길거리에서 자는 사람부터 나를 희롱하는 사람까지 정말 무서웠다. 27일에는 파리의 외곽지역도 가서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이제 언제 올지 모르는 이곳이 왠지 너무 아쉽고 그리울 것 같았다.

12월 21일-23일 12월 24일-25일

일주일 지하철 15.60유로 디즈니랜드 51유로 총 233유로

지하철 1.90유로 피자 7유로

햄버거 5.50유로 한인민박집 72유로

베르사유궁전 7.50유로 샌드위치, 음료수 10유로

에펠탑 7.50유로 기타 30유로

기타 25유로

5월 26일-27일

왕복차비 6유로 총 60.90유로

한인민박집 20유로

지하철 4.40유로

햄버거 7.50유로

아이스크림 3유로

기타 20유로

 

체코여행기(2월 20일-24일)

프라하의 연인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된 체코. 그래서 난 여기를 여행하기로 했다.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에 가기 위해 스위스 제네브에 기차를 타고 갔다. 제네브에서 프라하까지 버스가 운행하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버스티켓 학생할인 받아서 107유로에 구입하고 버스를 타고 13시간 동안 달렸다. 독일을 거치고 어렵게 프라하에 도착. 21일 새벽에 프라하에 도착. 친절한 체코인들 덕에 나는 쉽게 내가 예약한 한인민박집을 찾아갈 수 있었다. 민박집에서 아침 먹고 오후 1시까지 자다가 프라하 시내를 구경하기 위해 밖에 나갔다. 100유로 정도 환전하고 신시가지 바츨라프 광장을 구경하고 놀다가 구시가지로 가서 상점들도 구경하고 저녁이 되어서 체코는 돼지고기랑 맥주가 유명하고 싸다고 해서 레스토랑에 가서 맥주랑 음식을 시켜먹었었는데 맛이 없어서 실망하였다. 저녁 먹고 실망한 나는 어느 째즈바에 갔는데 노래를 들으면서 술도 마실 수도 있는 곳이었다. 체코에 온다고 힘들었던 나는 거기서 편하게 쉬면서 노래도 듣고 좋았다. 22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바로 프라하 성을 구경하러 갔다. 22번 트램을 타고 프라하 성까지 가서 구경하는데 집의 지붕이 거의 빨간색이었고 건축들이 너무 이뻤다. 나는 이런 체코 분위기가 좋았다. 까를교도 건너고 까를교 중심에 있는 소원 비는 동상 앞에서 소원도 빌고 저녁에는 다시 한 번 다른 레스토랑에 가서 맥주와 돼지고기를 시켜서 도전하였다. 그런데 어제와 다르게 너무 맛있었다. 흑맥주도 맛있고 고기도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우리 가족들. 혼자 먹어서 미안하기도 하고 같이 먹지 못해서 아쉽기도 하고 나 혼자 즐기는 것 같아서 맘에 걸렸다. 23일에는 ‘프라하 연인’ 드라마에서 등장한 전도연의 집을 찾아갔다. 거기 앞에서 사진도 찍고 기념품도 사고 체코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났다. 프랑스와 또 다른 분위기의 체코. 또 한 번 오고 싶었다.

2월 20일-24일

스위스 제네브까지 차비 7유로 총 290유로

체코 버스비 107유로

햄버거 10유로

환전 100유로

한인민박집 36유로

기타 30유로

 

스페인 여행기(4월 22일-25일)

스페인 역시 소매치기와 강도가 유명한 곳이라고 많이 들어서 무서웠지만 그래도 정열의 도시 스페인을 가보고 싶었다. 드디어 4월 22일 기차를 타고 샹베리에서 몽펠리에까지 가서 기차를 갈아타고 몽펠리에에서 바르셀로나까지 7시간 걸려서 밤 10시에 도착하였다. 역에서 바로셀로나 지도를 구해서 지하철을 타고 한인민박집으로 갔다. 지하철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헤매고 있던 나는 친절한 스페인 사람들 덕분에 쉽게 지하철을 찾을 수 있었다. 23일 나는 관광객을 위해서 바르셀로나에는 투어 버스가 운행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투어 버스 티켓을 사서 버스를 타고 바르셀로나를 돌아다녔다. 투어 버스는 버스를 타고 다니다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내릴 수 있고 내려서 구경하다가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와서 5분마다 운행하는 버스를 탈 수 있다. 나는 가우디 건축도 보고 구엘공원도 가고 그리고 제일 인상에 깊은 황영조 동상도 보았다. 이 동상은 한국에서 바르셀로나로 보낸 것이라고 한다. 나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동상 앞을 지나가는 외국인들은 한국을 거론하며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뿌듯하였다. 저녁에는 빠에야라는 스페인 전통음식도 먹고 상그리아라는 술도 마셨다. 빠에야는 밥과 해산물 등으로 요리한 음식인데 정말 맛있었다. 저녁에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남자 두 명이 내 뒤를 쫓아와서 나의 가방을 열려고 하였다. 나는 소리쳤고 남자 두 명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웃으면서 가는 것이다. 정말 소매치기들이 많았다. 다행이 잃어버린 것은 없었지만 나는 무서웠다. 바르셀로나 이 곳 또한 잊지 못할 것이다. 난 누가 스페인을 여행 가다고 하면 적극 추천하고 싶다. 소매치기는 많지만 그건 자신이 주의하면 되는 것이고 정열적인 이곳. 여행하기 좋은 곳 같다.

4월 22일-25일

지하철 6.65유로 총 137.65유로

방값 60유로

버스투어 22유로

빠에야 13유로

상그리아 6유로

기타 30유로

 

깐느 여행기(5월 16일-18일)

5월은 깐느에 영화제가 열린다. 매년 영화제가 열리는 이곳. 프랑스까지 와서 못 가보면 아쉬울 것 같아서 나는 깐느에 갔다. 축제기간이라 잠 잘 곳도 마땅치 않을 것이고 물가도 비싸지만 나는 무작정 간 것이다. 깐느에는 한인민박집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호텔에서 자야하고 그리고 자리가 있을지도 모르고 걱정을 한 가득 안고 5시간 정도 걸려서 깐느에 도착하였다. 다행이 운좋게 하룻밤에 20유로로 잘 수 있는 스튜디오를 구할 수 있었고 17일은 영화제 개막식이 있기 때문에 나는 외국 배우들을 본다는 기대로 들떠 있었다. 그러나 한국 배우들은 오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어서 너무 아쉬웠었다. 17일 아침, 나는 깐느 해변가를 돌면서 깐느를 구경했다. 그런데 옆에서 한국말이 들렸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최민식 배우가 있었다. 나는 달려가서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었다. 최민식 배우가 나에게 오늘 오후 5시에 개막식이 열릴 때, 자신은 옆에서 스크린쿼터 시위를 한다고, 그런데 한국인들이 많이 없다며 나보고 도와달라고 했다. 내가 저렇게 큰 배우를 도와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알겠다고 수락하였다. 오후 5시에 나는 시위 장소로 갔다. 나는 최민식 배우와 그 곳에 모인 한국인들과 함께 스크린쿼터 시위를 하였다. 솔직히 여러 방송국에서 나와 사진 찍고 촬영한다는 사실에 부끄럽긴 했지만 재미있었다. 1시간가량 침묵시위를 하고 나니 최민식 배우가 도와줘서 고맙다며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하셨다. 우리는 중국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명한 배우라서 잘난 척도 할 줄 알았는데 옆집 아저씨처럼 우리에게 편하게 말도 걸어주시고 유머도 있고 배우 같지 않은 편한 아저씨 같았다.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고 격려도 해주시고 그날 밤은 꿈을 꾸는 듯하였다. 저녁을 먹고 나서 우리는 아쉽게 인사를 하고 한국에서 다시 보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스크린쿼터가 무엇인지 관심도 없었던 내가 시위도 하고 최민식 배우를 통해 스크린쿼터에 대해 배우고 알게 되어서 이번 깐느 여행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

5월 16일-18일

왕복기차 6유로 총 96유로

방값 40유로

기타 50유로

 

나는 여행도 공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행을 하면 몸은 힘들고 피곤하겠지만 배우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책보고 하는 공부도 공부지만 몸으로 체험하고 느끼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