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 프랑스어·프랑스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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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학습 수기

현장학습 수기

05년 해외현장학습 체험기 - 윤희동
작성자 이** 작성일 2011-06-28 조회수 1711

해외현장학습을 다녀와서

윤 휘 동

프랑스 가자!! 동기 녀석이 건넨 이 한마디에 많은 생각들을 했었다.

프랑스학과에 다니고 있긴 하지만 불어는 사실 내가 잘 아는 전공이란 분야라기 보다는 지구 반대편 저멀리 어딘가에 있을 프랑스란 나라만큼 나에게 있어 내 일상의 언저리를 맴도는 그 무엇일 뿐이었고, 해외현장 학습이라는 프로그램은 공부 잘하고 집안 형편이 어느 정도 뒷받침이 되는 그런 준비되어 있는 학생들이나 참여하는 것이라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스물 셋이라는 법적 기준의 성인의 나이를 훌쩍 뛰어넘어 버린 적지 않은 나이에 어쩌면 영원히 음주와 가무만 즐기다가 대학생활을 마쳐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한 시기이기는 했지만, 프랑스라는 땅은 좀 더 불어실력을 쌓을 시간과 현장학습 참여 비용의 마련할 시간을 이유로 어렴풋이 1년 뒤에나 볼 수 있으리란 생각으로 복잡한 마음을 비웠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현장학습을 다녀온 후배를 만났다. 이 친구가 하는 말이 어차피 아무것도 모르고 1년 더 뜬구름 잡듯이 한국에서 불어공부 할 바에야 하루라도 빨리 현지에 가서 어느 정도 개념이라도 잡고 공부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그러니까 누군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주위만 맴돌게 아니라, 손이라도 마주잡고 인사라도 한번 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그런 뜻?

공부를 못하는 후배였으면 모를까, 내가 아는 후배들 중에서도 개중에 공부를 잘하기로 알려진 친구였기에 마음을 고쳐먹는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돈? 그거야 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조금만 나쁜 마음을 먹으니 어려울 게 없었다. 어차피 여태까지 불효자로 살아왔는데, 1년만 더 하자고 말이다. 곧장 현장학습 참여자에 이름을 보탰고, 뜻하지 않게 나이 약간 많음과 한가로움의 이유로 출발 전의 준비사항에 적극 가담하였다. 비자신청에 따른 각종 서류 준비 및 항공권 예약, 환전 준비 등등 하루 하루가 정말 바쁘게 지나갔다. 비자신청에 따른 서류들의 문서양식이 바뀔 때마다 모임이나 연락을 통해서 수정을 해야했고, 비자신청에서 거부당한 문서들은 다시 정확한 양식을 찾고, 다시 한번 모임을 가져서 서류들을 수정하는 한편 아르바이트 등 바쁜 일정을 이유로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에 대해서는 직접 작성을 해주기도 했다. 비자신청 비용이 꽤 비쌌기 때문에 서류가 통과가 되지 않는 것은 아까운 돈을 떠나기 전부터 낭비하는 것을 의미했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각종 준비사항에 따른 교통비 등의 비용은 공금으로 사용하였는데, 각각의 준비 사항에 차질이 생기면 나중에 누구의 잘잘못을 따져야 되는 경우를 생각해서라도 모든 준비사항은 교수님의 조언을 통해 천천히 신중하게 준비해 나갔다. 항공권은 국제적으로 석유 값이 한참 올랐던 터라 그 가격 또한 예년에 비해 많이 올랐었고, 우리가 떠날 예정이었던 9월 말은 항공권을 예약했던 시기인 8월과 한달 정도 밖에 차이가 없어서 다수의 좌석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도 분주하게 돌아다닌 보람이 있었는지 비자, 항공권, 환전, 보험 등의 준비사항이 차례차례 해결되었고, 인솔 교수님이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이변 없이 모든 사항을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파리에서 우리가 머무를 샹베리까지의 이동수단을 놓고 많은 의견이 분분했지만, 인솔 교수님의 기차시간과 가격 등의 정확한 현지 정보를 바탕으로 비용은 조금 더 들것이라 예상되었지만, 무거운 짐으로 인해서 첫 출발부터 힘겹게 시작하느니 돈을 조금 더 쓰더라도 편안하게 숙소까지 이동하는 방안을 택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내 몸집의 몇 배나 되는 짐을 끌고, 들고 이동한다는 것은 이런 표현이 맞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뼈를 깎는 고통을 동반하는 하는 것이었고, 돈을 조금 들이더라도 편하게 이동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가 절실하게 느꼈다. 게다가 낯선 땅에서인데 오죽했으랴...

프랑스에 도착한지 4일째 되던 날 내 옆자리에는 눈 파랗고 머리가 금발인 국적불명의 나보다는 나이가 조금 들어 보이는 여자애가 앉아있었다. 선생님의 수많은 말들 속에서 presenter라는 겨우 그 한 단어를 알아듣고 서로 옆자리의 사람과 자기 소개를 해야되는 것임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그래도 그나마 한 단어라도 알아들었으니... 근데 참 신기하다. 내가 떠듬떠듬 뭘 말하고 있는지, 내 귀에 어떤 말이 들리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 옆에 앉은 여자애가 러시아 사람이고 나이는 34살에 심리학을 전공했다는 것을 내가 알아버렸다. 한 몇 일 동안은 그렇게 정확하진 않지만 몇몇 단어들의 조합들로도 수업을 따라갈 수 있어서 안도했고, 한국식으로 책 읽듯 발음했던 단어들이 저렇게 물 흐르듯 여러 단어들이 한 단어처럼 이어져 쏟아져 나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긴장감에 충만하여 하루 하루를 보냈다. 수업은 크게 Grammaire 문법, Comprehension orale 듣기, Comprehension ecrite 독해, Expression orale 말하기, Expression ecrite 쓰기, Civilisation 문화 시간으로 나누어 졌는데, 문법수업시간이 가장 많았기에 또 다시 수면의 늪으로 빠지는 건 아닌가 우려했지만, 학생들이 다들 이해했는가 눈으로 확인하고 모르는 눈치면 꼬치꼬치 캐묻는 선생님 덕택에 잠은커녕 긴장의 연속이었고, 문법을 한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불어문법을 불어로 이해하는 것이라 더욱 쉬운 부분도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험과 동시에 머릿속에 잊혀져 있던 확실하지 않게 마냥 외웠던 문법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말하기 시간에는 2시간을 수업한다면 1시간은 상점에서 물건 사는 일, 상대방의 의견을 묻는 등의 표현을 배우고, 1시간은 배운 표현을 가지고 3,4명의 조별 연극을 통해서 직접 그 표현을 활용해 보도록 했고, Civilisation시간에는 먼저 프랑스의 교육, 정치, 음식, 지리 등을 배우고 남은 시간이나 숙제를 통해서 각각의 분야에 대해서 각자의 나라에 대해서도 소개하게 함으로써 좀 더 확실하게 이해를 시켰다. 하루에 수업시간이 많아야 4시간 밖에 되지 않았고, 일주일 중 주말을 포함해서 3일은 수업이 없었기 때문에 쉬엄쉬엄 공부해도 되겠다 라는 예상과는 달리 일주일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주말이면 미뤘던 빨래와 분량 많은 숙제,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왔던 셀 수 없는 시험들, 장을 봐서 직접 밥을 해먹는 아주 사소한 일들 하나 하나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던 시간들이었다. 으레 프랑스에서 공부한다고 하면 꽤 불어를 잘하겠다고 부러움 썩인 목소리로 안부를 묻던 주위 사람들의 기대와 그 기대에 못 미치는 나의 보 잘것 없는 불어실력에 스스로 좌절하고 낙심하던 시간들, 4개월이라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를 가겠다고 결심했을 때의 마음속에 품었던 막연한 꿈들을 무엇 하나 제대로 실현시키지 못한 죄책감에, 매일 같이 있어서 서로 의지할 수는 있었지만 불어실력이 느는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같은 방 친구들에게 책임 회피하던 나의 못난 모습에 프랑스에서 보았던, 들었던, 느꼈던 조그마한 일상들이 나에겐 너무나 소중하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숨 섞인 볼멘 목소리로 내 스스로를 자책하며 그렇게 한 학기를 마쳤다. 그리고 나는 한 학기를 더 남아서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만족스럽지 못한 나의 지난 한 학기를 스스로에게 보상해주고 싶었고, 꿈만 꾸던 프랑스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프랑스란 나라를, 있는 그대로의 내 스스로를 보고싶었다. 당장 집을 구하는 것이 급했는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정보가 없이 학교를 통해서 얻은 집들은 나중에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처음 계약조건과는 다른 조건들이 더 붙거나 기존의 좋았던 조건들 마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학교를 통해서 집을 구하는 일은 정말 마지막까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생각해보기로 했다. 주위에서 아는 누군가가 살아봤던 경험이 있는 집들을 구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지만, 샹베리에서 살고있던 한국 학생들의 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었고, 그나마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던 집들도 방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다가오는 시간에 떠밀려서 결국엔 우리나라로 치자면 부동산과 같은 학생 AGENCE에서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AGENCE의 장점은 AGENCE비라는 수수료를 100유로 정도 추가로 지불해야 했지만, 그 대신 집과 관련된 모든 사항(보험 및 보증금, 불편한 사항...)은 AGENCE에서 책임지고 해결해 주었기 때문에 의뢰한 AGENCE에서 좋은 조건의 집만 많이 확보하고 있다면 직접 방문 후에 선택만 하면 되었다. 내가 살았던 집은 정원이 딸린(프랑스의 거의 대부분 모든 주택이 정원을 가지고 있다^^) 개인 주택으로 2층 전체를 학생들에게 세를 주는 형태로, 방3개에 부엌과 화장실, 욕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그런 곳이었다. 프랑스 여학생 1명과 중국 여학생 1명 그리고 나 셋이서 살았었는데 혼자만 남자라 조금 불편하진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조금 친해지고 나서는 스스럼없이 밥도 같이 먹고 영화도 같이 보러 다니면서 정말 편하게 지냈던 것 같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집도 괜찮았었지만 같이 사는 친구들이 서로를 먼저 배려해 주었기에 더더욱 좋았던 것 같다. 한 학기를 더 프랑스에서 보내면서 더 이상 늘지 않는 불어실력에 조바심으로 스스로를 탓하지도 않았고, 내가 처음부터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책상 앞에서 헛되이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프랑스인 그들의 생활 속을 좀 더 들여다보고자 노력했고, 짧지만 여러 번의 유럽여행을 통해서 조금씩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조그만 우물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 동참할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갑자기 찾아온 주위로부터의 자유에 어쩔 줄을 몰라서 자기 자신을 방종하거나, 낯선 땅의 낯선 설레 임에 너무 꿈만 꾸다가 현실에 좌절하거나,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려는 자신에게만 너무 급급했던 나머지 남을 배려하지 못한 체 자신을 위해서 남에게 작지만 큰 상처를 주어야만 했던 기억들이 후회로 남는다. 다음 현장학습 참여자들에게는 어디가면 어디가 싸다는 경제적인 정보말고도 이러한 경험자들의 부끄러운 이야기까지도 잘 전해져서 자신에게 찾아온 커다란 기회 속에서 좋은 기억만을 가져오길 바란다.